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끊임없이 자기를 완성시킨 Amy Shuard (에이미 슈아드)

정준극 2008. 2. 26. 16:14
 

▒ 끊임없이 자기를 완성시킨 Amy Shuard (에이미 슈아드)

 

 

런던 토박이인 에이미 슈아드는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을 때에 더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잠시 무대를 떠났다가 몇 년후 다시 돌아와 더 훌륭한 실력을 보여준 특이한 경우의 소프라노이다. 1924년 런던에서 태어난 슈아드는 찬란하고 강렬하며 안정된 고음을 콘트롤하는 드라마틱 소프라노로서 이름을 떨쳤다. 베르디와 야나체크의 역할로서 유명했던 그는 점차 레퍼토리의 폭과 심도를 높여 나중에는 가장 완성된 브륀힐데와 엘렉트라로 인정을 받았다. 슈아드를 가르친 스승은 전설적인 소프라노 에바 터너(Eva Turner)였다. 슈아드도 스승 에바 터너와 마찬가지로 투란도트에서 특별한 성공을 거두었다. 전성기의 그의 소리는 대단히 폭이 넓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마치 단단한 모서리를 지닌것과 같은 음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배우가 일부러 소리를 집중적으로 꾸미듯한 면도 보여주었다. 그만큼 노래에 연기를 적절하게 배합한 드라마틱 소프라노였다.

 

투란도트

슈아드는 런던의 트리니티(삼위일체)음악대학에서 이보르 워렌(Ivor Warren)에게서 공부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의 특별한 음성을 인정한 에바 터너에게서 푸치니, 베르디, 바그너를 집중적으로 배웠다. 슈아드는 24세 때에 종교재단의 지원을 받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순회연주한 일이 있다.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음역과 드라마틱한 표현에 무척 감명을 받고 환호하였다. 그로부터 슈아드는 세계의 소프라노가 되었고 쇄도하는 출연 요청에 따라 아이다, 줄리에타, 비너스(탄호이저)등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한편, 남아프리카에서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새들러스 웰스 오페라(Sadler's Wells Opera)에 머물게 되었고 이곳에서 전격적으로 뮤제타를 맡아 대성공을 거두었다. 슈아드는 같은 시즌에 새들러극장에서 산뚜짜, 마르게리트, 카르멘을 맡아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1950년에 새들러극장에서 부른 돈 카를로의 에볼리(Eboli)는 최대의 극찬을 받은 것이었다. 그가 O don fatale를 부를때 관중들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으며 아리아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는 바람에 공연이 잠시 진행되지 못할 정도였다. 이어 그는 야나체크의 카타 카바노바(Kat'a Kabanová)에서도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슈아드는 영국 오페라계에서 혜성과 같은 존재이다.

 

나비부인


그러나 이때 그는 최고의 디바로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더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무대를 떠난 그는 밀라노로 가서 새로운 마음으로 오페라 공부를 하였다. 2년후 런던으로 돌아온 슈아드의 음성과 연기는 더할수없이 성숙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더 폭이 넓고 더 풍성하며 보다 연마된 그의 음성을 들을수 있었다. 곧이어 다시 맡은 카타 카바노바는 슈아드의 예술적 성장을 충분히 보여준 것이었다. 이 공연에서 지휘를 맡은 체코 출신의 라파엘 쿠벨리크가 ‘더 이상의 카타 카바노바는 없을것’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이와 함께 런던은 슈아드를 에바 터너의 후계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 슈아드가 맡은 ‘영사’(메노티)에서의 마그다 소렐(Magda Sorel) 역할은 그를 제2의 에바 터너로 인정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그가 맡은 역할은 예누파, 리자(스페이드의 여왕), 아이다, 류(투란도트) 등이었다. 슈아드는 1957년, 51세라는 비교적 짧은 인생을 살고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