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2차대전후 최고의 바리톤 Nicolae Herlea (니콜라에 헤를레아)

정준극 2008. 3. 25. 10:04
 

2차대전후 최고의 바리톤 Nicolae Herlea (니콜라에 헤를레아)

 

 


루마니아는 최고의 바리톤들을 배출하였다. 세르반 타씨안(Serban Tassian), 페트르 스테파네스쿠-고안가(Petre Stefanescu-Goanga), 데이비드 오하네씨안(David Ohanessian), 바실 마르티오이우(Vaile Martinoiu), 그리고 니콜라에 헤를레아이다. 루마니아 국민들은 축복받은 국민들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이들 세기적 바리톤의 음성을 어느 때나 들을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뛰어난 바리톤들은 주로 부쿠레슈티 오페라에 전속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쿠레슈티 오페라 극장은 ‘오페라와 바리톤의 극장’(The House of Opera and Baritones)이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다. 이같이 기라성과 같은 바리톤 중에서 니콜라에 헤를레아만이 유일하게 서방세계에 널리 알려졌을 뿐이며 다른 사람들은 국내파였다. 철의 장막이 위대한 바리톤들의 해외 진출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세계에는 뛰어난 성악가들이 대거 배출되었었다. 그러나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오페라의 활동도 크게 제약을 받아 위대한 성악가들이 설 자리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다가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세계의 오페라 무대는 다시한번 위대한 오페라 아티스트들의 등장에 감격하게 되었다. 바리톤의 경우에는 니콜라에 헤를레아를 비롯하여 테오도르 우프만(Theodor Uppman), 게오르그 오츠(Georg Ots), 주세페 타데이(Giuseppe Taddei), 파벨 리시치안(Pavel Risitsian)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리골레토

 

헤를레아의 음성은 아름답고 풍부하며 벨벳과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다. 바리톤이지만 베르디의 높은 테씨투라(Tessitura: 음역)에서도 어떠한 어려움이 없었다. 영광스럽게 울려 퍼지는 고음이다. 헤를레아는 세련된 레가토로서 아리아를 불렀다. 레가토를 위한 호흡 조절은 참으로 놀라운 경지의 테크닉이었다. 뿐만 아니라 헤를레아 만큼 무대와 연기에 대한 예민하고 깊이 있는 안목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티토 고비(Tito Gobbi)처럼 노래하는 배우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노래와 연기는 별개의 개념이었으며 따라서 그는 이 두 개념이 융화되도록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연기에 비하여 노래가 월등하지 못하다고 할수 있으나 이런 부족함은 그의 아름답고 풍성한 음성이 커버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한 마디로 그는 ‘헤를레아 음성’(Herlea Sound)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다. 그의 돈 카를로(Don Carlo)에 대하여 언론들은 ‘헤를레아는 돈 카를로를 풍부함과 따듯함, 그리고 정중함과 온화함으로 불렀다. 그의 정중함에는 내면적인 억제된 감정이 함축되어 있으며 그는 우아함과 지성으로 연기하였다’고 썼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는 그의 피가로 공연에 대하여 ‘코벤트 가든은 니콜라에 헤를레아를 통해서 새롭고 깊이 있는 피가로를 발견하였다. 벨벳과 같은 음성, 활기찬 행동, 지칠줄 모르는 쾌활함과 배짱으로 코벤트 가든의 무대는 압도당하였다. 헤를레아는 피가로에게 속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민첩함, 짓궂음, 치밀함...그야말로 천부적인 피가로이다’라고 말했다. 리골레토에 대하여 뉴욕의 언론들은 ‘어제밤 헤를레아의 리골레토는 뛰어난 노래와 뛰어난 연기가 복합된 가장 위대한 리골레토를 보여준 것이었다. 리골레토의 변덕스러움, 그러면서도 번뇌와 광포한 열정을 뛰어나게 표현한 연기였다’고 말했다.

 

'운명의 힘'에서 돈 카를로

 

니콜라에 헤를레아는 1927년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나 부쿠레슈티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이어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연마하였다. 그의 첫 오페라 데뷔는 1951년 부쿠레슈티 오페라에서 실비오(팔리아치)로였다. 그해에 그는 제네바, 프라하, 브뤼셀 등지의 국제콩쿠르를 모두 휩쓸었다. 이로서 그는 당대의 루마니아 최고 바리톤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많은 나라를 방문하였다. 메트로에서는 1964년부터 3년동안 주역 바리톤으로 활동하였다. 1962년 루마니아 정부는 그에게 ‘최고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하였다. 그는 2차 대전후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운 바리톤의 한 사람이다.]

 

'토스카'에서 스카르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