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세기의 바리톤 Pasquale Amato (파스쿠알레 아마토)

정준극 2008. 3. 25. 10:06
 

세기의 바리톤 Pasquale Amato (파스쿠알레 아마토)

 

 

 

파스쿠알레 아마토는 시대를 초월한 이탈리아 최고의 위대한 바리톤중 한 사람이다. 그의 음성은 찬란하게 확고하다. 고음에서 울리는 소리는 정말로 탁월하다. 그는 바리톤으로서 하이A 음도 대단히 쉽게 냈다. 그의 목소리는 특이하다. 벨벳과 같이 매끄러우면서도 영웅과 같은 장엄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음성과 다른 바리톤의 음성은 확실히 구별된다. 그는 스무스한 레가토로 노래를 부르며 가사와 음절은 대단히 정확하다. 그의 음성은 진정으로 감격적인 것이다. 굳이 그의 음성을 비교하자면 마티아 바티스니니(Marria Battistini)의 벨칸토 스타일과 티타 루포(Titta Ruffo)의 영웅적인 찬란함이 혼합된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그같이 찬란하던 그의 음성도 너무 무리하게 사용했기 때문인지 손상되어 불행하게도 40세 초반부터 더 이상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생애의 말년을 루이지애나대학교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데 바쳤다.

 

'토스카'의 스카르피아


파수쿠알레 아마토는 1878년 나폴리에서 태어났다. 나폴리의 산 피에트로(San Pietro)음악원에서 베냐미노 카렐리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는 21세의 청년으로 나폴리의 벨리니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으로 데뷔하였다. 이어 그는 뛰어난 재능과 모습, 그리고 무대 맨너로서 정상을 달리기 시작했다. 데뷔 이후 그는 ‘마농 레스코’에서의 레스코, ‘카르멘’의 에스카미요, ‘가면무도회’의 레나토, ‘파우스트’의 발렌틴과 같은 역할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그는 밀라노의 테아트로 달 베르메, 제노아, 칸타니아, 몬테 칼로, 그리고 독일과 러시아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그는 도니제티의 ‘마리아 드 로한’(Maria de Rohan)과 레온카발로의 ‘자자’(Zazà)로 특별한 성공을 거두었다. 1904년 그는 처음으로 메트로에 데뷔하였다. 빅토 모렐(Victor Maurel)이 단골로 맡았던 리골레토를 인계받았던 것이다. 그는 특히 남미에서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남미에서는 지금까지 유럽과 메트로에서 맡았던 모든 역할을 선보여 환호를 받았다. 1907년, 라 스칼라에 진출한 그는 얼마 있지 않아 라 스칼라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플레아와 멜리상드’의 이탈리아 초연에서 골러드(Golaud)를 맡아 탁월한 노래와 연기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어 라 스칼라에서 카탈라니의 ‘라 왈리’(La Wally)와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에 출연하여 프리마 바리톤으로서 그의 존재를 재확인해 주었다.

 

'이고르 공'

 

1908년부터는 다시 메트로와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메트로에서 그는 주로 이탈리아 레퍼토리에서 엔리코 카루소와 자주 공연하였다. 메트로에서 그가 보여준 성공적인 역할은 루나 백작, 카를로스, 애쉬톤, 토니오, 리골레토, 암포르타스 등이었다. 1910년에는 메트로의 ‘황금서부의 아가씨’ 세계초연에서 잭 랜스(Jack Rance)를 맡기도 했다. 이때 상대역은 에미 데스틴, 엔리코 카루소, 아다모 디두르(Adamo Didur) 등이었다. 그의 레퍼토리는 무려 70여 역할을 소화할수 있는 폭넓은 것이었다. 그는 또한 칠레아, 죠르다노, 지아네티, 담로슈등 비교적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에도 빈번히 출연하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오페라 아티스트로의 경력을 시작할때부터 너무 무리하게 목소리를 사용하여 음성이 퇴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1912년, 그가 43세 때부터는 누가 듣더라도 소리에 어려움이 생겼다. 1920년에 이르러서는 큰 무대에 서기가 어렵게 되었고 작은 도시의 시민회관 등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에 출연하다가 나중에는 그나마도 어렵게 되어 무대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1942년, 64세를 일기로 루이지애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뉴욕에 있을때 이탈리아 성악가들을 중심으로 아마토오페라단을 만들어 여러 차례 공연을 가졌던 것은 특별한 업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