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강화-인천

전등사 답사기

정준극 2009. 2. 28. 01:00

전등사 답사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은 어딘가?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전등사라는 것이다. 고구려 소수림왕 시절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때가 서기 381년이므로 지금부터 약 1천4백년 전의 일이다. 전등사의 역사에 대하여는 사실 인터넷에 자세히 나와 있기 때문에 굳이 부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 있으니 알아서들 찾아 보시오'라고 말하면 미안하므로 그래도 간략히 다시 한번 짚어보자면, 진나라의 아도화상이란 불교전도사가 우선 강화도에 상륙하여 정족산에 전등사를 짓고 내친김에 신라에 가서 불교를 전하였다는 것이다. 아도화상은 한반도에 와서 세 개의 절을 창건했다고 하는데 두 개는 어딘지 모르겠고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전등사뿐이라고 한다. 전등사의 옛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였다. 그러다가 고려 충렬왕의 왕비인 정화궁주가 이 절에 송나라에서 가져온 경전과 옥등(玉燈)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진종사를 전등사라고 명칭 변경하였다는 것이다. 전등은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이다. 즉, 부처의 법맥을 이어 받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정족산 전등사

 

전등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정족산성 또는 삼랑성(三郞城)의 안이다. 삼랑성은 일찍이 단군께서 세아들(삼랑)에게 정족산에 가서 성을 쌓으라고 해서 만들어진 성이라고 한다. 단군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니 그럼 단군의 부인은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세 아들은 나중에 어찌되었나? 이런 유치한 궁금증을 뒤로 한채 다시 세아들의 얘기로 돌아가면, 단군의 세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열심히 성을 쌓았는데 돌로 쌓았던 것이 아니라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었다고 한다. 원래 성이라는 것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는 것이다. 그 오랜 옛날인 고조선 당시에도 강화도를 넘보는 못된 족속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전등사 일대는 상당기간동안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쌓은 토성으로 만족하며 지내다가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려 고종 때에는 삼랑성 안, 지금의 전등사 앞에 임시궁궐(假闕)을 건설했다. 고려는 몽골의 침략에 대응키 위해 강화도에 임시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지었다. 강화읍내의 고려궁지는 고려시대에 임시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지었던 장소로서 현재는 조선시대에 지은 건물들이 몇 채 남아 있다. 그러나 강화읍내의 궁궐도 임금의 안전이 안심이 안되어 풍수지리설에 의거, 정족산(鼎足山)의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 전등사 앞에 있었다는 가궐은 흔적만 남아 있다. 정부는 삼랑성 안의 가궐을 발굴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어서 전등사 앞의 야산이 온통 파헤쳐 있다. 가궐 발굴 작업이 마무리되어 문화재로 지정이 되면 전등사를 찾아갈 명분이 또 하나 생기는 것이다.

 

 전등사 대웅보전. 낡기는 낡았다.

 

삼랑성은 동서남북의 문이 있지만 현재 장엄하게 남아 있는 것은 남문뿐이고 동문과 서문 등은 홍살모양의 석문만 남아 있다. 전등사에 입장하려면 남문이나 동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된다. 입장료를 꼬박 꼬박 받는다. 다만, 신도증을 보이거나 65세 이상이라는 증명서를 보이면 무료입장이다. 동문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주차비 2천원을 받는다. 전등사 매표소에서 표를 산후 동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비각이 하나 나온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열심히 싸운 양헌수(梁憲洙) 장군의 승전비이다. 동문의 성벽 위로 걸어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달맞이 길이다. 보름을 기해서 성벽을 따라 올라가면 보름달이 떠오르는 장엄한 광경을 볼수 있고 그 때 부처님이든 누구에게든 기도를 하면 만사형통이 된다고 한다. 한참 올라가다가 전등사 경내에 들어서면 윤장대(輪藏臺)라는 움직이는 목제 탑이 나온다.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과연 기가 막힌 아이디어이다. 윤장대의 허리쯤에는 시주함 입구가 마련되어 있다. 경전을 돌리고 나서 돈을 넣으면 더욱 효과가 있다고 한다. 수유리 도선사에도 윤장대가 있다.


잠시 윤장대를 돌려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나에게는 효험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여 내친걸음을 옮기면 전등사라는 현판이 붙은 누각이 나온다. 이 누각의 아래 계단을 통해서 절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누각은 대조루(對潮樓)라는 이름이다. 대조루는 불교서적을 판매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대조루 앞 쪽에 있는 건물은 죽림다원(竹林茶園)이라는 찻집이다. 절의 음악과는 달리 세미 클래식음악이 흘러나오는 운치 있는 집이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다원의 주변에는 장작을 많이 마련해 놓았다. 밖에 진열해 놓은 여러 가지 항아리들은 보기에 좋다. 여름에는 뜰에 앉아 맑은 차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시원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전등사의 대웅보전은 보물178호이다.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여 불심을 절로 일으키게 만든다. 대웅보전을 거쳐 약사전, 명부전, 삼성각, 향로전, 범종루 들을 두루 둘러보고 난후 마당에 있는 시원한 샘물을 마시면 갈증이 단숨에 씻긴다. 샘물을 받아 놓은 그릇에는 동전들이 수두룩하게 들어 있다. 사람들이 물은 마시지 않고 동전을 던지면서 무슨 소원성취를 빌었던것 같다. 만일 샘물 옆에 ‘이곳에 5백원짜리 동전을 자꾸자꾸 넣으면 만사형통합니다’라고 써놓으면 수입이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대웅보전의 처마 기둥에는 나녀(裸女)의 전설이 있다. 그 전설은 다 아는 내용이므로 역시 생략코자 한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해 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줄거리만 반복하면 다음과 같다. 전등사 공사를 책임맡은 도편수에게 평생을 약속한 여인이 있었는데 도편수가 공사 때문에 집을 비우고 들어오지 못하자 여인은 뜻한바 있어서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된 도편수는 너무 기가 막혀서 대웅보전의 처마 밑 기둥에 여인을 모습을 나녀로 새겨 넣어 평생토록 그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고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마의 기둥을 자세히 보면 나녀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서 분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전등사에서 가장 보고 싶은 물건은 충렬왕비 정화궁주가 시주했다는 옥등인데 지나가던 스님에게 옥등은 어디 있으며 볼수는 있는지 물어 보았더니 자못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도 잘 몰라요’라며 지나쳐 버렸다. 아마 어디 깊숙이 감추어 놓고 잘 간수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스님의 눈빛에 주눅이 들어 옥등에 대하여는 더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옥등을 볼수 있는 방법이 있다. 책방에 가면 옥등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이 있으므로 그것으로나마 관찰을 대신할수 밖에 없다.


한쪽에서는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었다. 적묵당(寂黙堂)이라고 한다. 기와불사를 접수하고 있었다. 새로 건물을 짓거나 오래된 건물의 기와를 바꾸기 위해 사용할 기와들을 시주하라는 것이었다. 기와에는 자기 이름이나 소원을 간단히 적어 넣도록 하니 기념도 될것이다. 대웅보전과 약사전 사이에 아예 작은 매점과 같은 집을 지어 놓고 기와불사 등을 접수하고 있다. 적묵당 건축불사뿐만 아니라 교육관 중창불사도 함께 진행한다고 되어 있다. 전등사를 뒤로 하고 삼낭성의 북문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정족산 사고(史庫) 건물이 나온다. 사고 안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임진왜란 때에 조선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물이다. 삼랑성의 북문을 나서면 저 멀리 석모도까지 볼수 있다고 하지만 빽빽한 나무들 때문에 아무것도 볼수 없다. 내려오는 길은 남문을 통과하면 좋을것 같다. 남문은 종해루(宗海樓)라고 한다. 이 산중에 저런 건물을 세웠으니 그 옛날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전등사에서 내려오면 남문이든지 동문이든지 식당들이 줄지어 서 있다. 더덕구이와 산채 비빔밥은 먹을만 한것 같다. 원래 강화는 동그랗게 생긴 순무라는 것이 특산품이다. 순무로 담근 김치를 먹으면 눈과 귀가 밝아진다고 한다. 보기 싫은 것 많고 듣기 싫은 것 많은 이 세상에서 눈과 귀가 더 밝아지면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릴 것 아닌가? 

  

 삼랑성 동문. 전등사 동문매표소. 오른쪽 주차장이라고 쓴 곳으로 가면 옛 전등각 자리.

 삼랑성의 남문인 종해루.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종해루의 위용

 전등사 극락전

 남문 지나서 있는 연못의 돌개구리 조각. 황소개구리?

정족산 삼랑성 성곽. 한복을 입고 횃불을 든 여고생 달맞이 행렬이 걸어가기에 알맞은 코스이다.

 기와불사 접수처

 전등사 누각(대조루)

 전등사 대조루. 오묘한 뜻이 담겨 있을 것 같은 명칭이다.

 동자승 등등.

 전등사 명부전

 전등사 명부전의 단청과 용두 장식

 전등사 명부전의 벽화

 전등사 범종

 범종루 앞 나무에 조각한 달마선사. 신통하다는 생각보다는 나무가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전등사 범종루. 운치있는 누각이다.

 도랑의 석교와 해태조각

 범종루의 목어

 범종루

 양헝수 장군 승전비

 전등사 삼성전

 전등사 약사전 

 약사전에 모신 부처

 윤장대

 윤장대 세부

 공사중인 적묵당

 전등사 경내의 죽림다원

 죽림다원 앞의 항아리들

 샘물에 던져 넣은 동전들

 전등사 연못

 전등사 향로전

 대조루의 전등사 현판

 산속 나무 아래의 광경

 장사각

 정족산 사고

삼랑성 북문

 달맞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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