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들은 과연 몇명?
빈센트 길의 '동방박사의 경배'. 참으로 신통하게도 동방박사를 그린 그림을 보면 세명 중의 한 사람은 흑인이다. 아프리카에서 왔나? 그건 동방이 아니라 남방인데! 하기야 인도 사람 중에도 얼굴이 검은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림에 등장하는 검은 사람의 모습은 두툼한 입술 등 아프리카 사람처럼 보여서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흑인이 페르시아 스타일의 터번을 쓰고 있다.
초기 기독교에서도 마기(Magi)라는 단어를 왕이라고 해석하지 않았다. 다만, 초기 기독교의 신비주의 교회(그노시스교)에서는 마기를 왕과 흡사한 높은 지위의 인물이라고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초대 교회에서는 교회예식을 통해 마기를 왕과 거의 같은 존재로 간주하였다. 이는 시편 72편 10-11절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기록된바 ‘10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11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라는 구절이다. 영어로는 The kings of Tharsis and the islands shall offer presents: the kings of the Arabians and of Saba shall bring him gifts: and all the kings of the earth shall adore him이다. 한글 번역이 조금 이상하게 되었지만 아무튼 시편에서는 예물을 가지고 와서 경배를 드린 사람들을 왕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시편에 등장하는 왕들을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마기와 연관시킨다고 해도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온 사람들이 다시스(Tharsis), 아라비아(Arabia: 스바), 사바(Saba)에서 온 왕이라는 근거는 없다.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들이 마술사라는 것도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이들은 사제(성직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마기가 기본적으로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이라면 마술이나 마법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마술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성술을 이용하여 꿈을 해석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들도 꿈에 나타난 내용을 점성술로 해석하여 아기 예수를 찾아 나섰다고 볼수 있다.
천사가 동방박사들을 깨워서 별을 따라 가라고 전하는 장면의 부조. 동방의 박사들, 또는 왕들인데 체면불구하고 이불 한채를 함께 덮고 자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동방박사는 과연 몇 명이나 왔을까? 우리는 보통 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동방박사를 그린 성화를 보면 거의 모두 세사람만 등장한다. 하지만 세 사람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이 세 가지이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세가지이다. 동방에서는 12라는 숫자를 선호한다. 하기야 동양의 12간지를 생각하면 그럴수도 있다. 그러므로 세 명이 아니라 모두 열두 명의 박사들이 왔다는 주장이 있다. 열둘이라는 것이 완전한 숫자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열두 지파, 열두 제자 등등. 그리고 만일 이들이 왕과 같은 귀한 신분이라면 종자도 없이 혼자 그 먼 길을 왔을 리가 없다. 적어고 각자 최소한 1-2명의 종자 또는 수행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먼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낙타를 여유 있게 데리고 다니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므로 동방박사가 세명이라고 한다면 하인들을 포함해서 최소한 10여명은 된다고 본다. 또한 지체높은 사람들이므로 호위 병사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만일 동방에서 열두명의 왕들이 찾아왔다면 그 일행은 수십명에 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 예술에는 동방박사가 몇 명이라는 기준이 없었다. 예를 들어 성베드로 묘지의 그림에는 두 명으로 되어 있다. 로마에 있는 라테란(Lateran)바실리카의 그림에는 세 명으로 되어 있다. 이탈리아의 도미틸라(Domitilla) 공동묘지의 그림에는 네명으로 되어 있다. 파리의 교회박물관에 있는 대형 화병에는 여덟 명의 동방박사들이 그려져 있다. 그러므로 세명이라는 것은 그저 상상일 뿐이다.
복음서중에서 유일하게 동방박사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마태. 마태의 복음서 작성을 돕는 천사
동방박사들의 이름도 확실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가스파르(Gaspar), 멜키오르(Melchior), 발타자르(Balthasar)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이름은 6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발견된 그리스 서류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8세기에 널리 알려지게 되어 그렇게 알고 있게 된 것이다. 가스파르는 카스파르(Caspar) 또는 야스파르(Jaspar)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경외서인 도마행전(Act of Thomas)에는 곤도파레스(Gondophares)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는 페르시아의 구다파라사(Gudapharasa)라는 이름을 변형한 것으로 구다파라사는 페르시아제국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최초의 인도-파르티아(Indo-Parthia: 카스피해 남쪽에 있던 왕국)의 왕이 된 인물이다. 가스파르라는 이름은 구다파라사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사도 도마는 페르시아에 전도여행을 떠나서 구다파라사왕을 만났다고 한다. 구다파라사왕은 예수께서 탄생할 시기에 동방의 왕이었으므로 그가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기 위해 왔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동방박사의 공현 조각. 여기서는 동방박사가 두명만 등장한다. 그리고 복장과 헤어 스타일을 보니 그리스 또는 로마 스타일이어서 베들레헴으로부터 동쪽에서 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동방박사들의 이름도 나라에 따라 종파에 따라 서로 다르게 부르고 있음을 지켜볼수 있다. 순교자열전(Martyrology)에는 이들을 성인의 반열에 올려서 성가스파르, 성멜히오르, 성발타자르로 기록하여 놓았다. 이들의 축일은 성가스파르가 1월 1일, 성멜히오르가 1월 6일, 성발타자르가 1월 11일이라고 되어 있다. 이들이 과연 성인일까? 마태복음에 동방박사의 이야기가 등장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왕 중의 왕으로 태어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으로 이방인들의 경배를 받았다는데 있다. 물론 태어나자마자 처음으로 경배하러 온 사람들은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었지만 그 다음에는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이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나 서기관이나 귀족이나 권세자들이 아니었다. 여기에 큰 의미가 있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를 처음 경배한 사람들이 미천한 사람들, 이방인들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저러나 이른바 동방박사들을 성인으로 올려놓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이교도들인 동방박사들이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순교를 했나? 또 기적을 보였나?
동방박사들의 공현. 그런데 한 사람은 왕관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흑인이었는데 여기서는 흑인이 없다.
시리아의 기독교인들은 동방박사들의 이름을 라르반다드(Larvandad), 호르미스다스(Hormisdas), 구쉬나사프(Gushnasaph)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이름은 페르시아 스타일이기 때문에 동방박사들이 페르시아에서 왔다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것은 아니다. 아르메니아교회는 동방박사 세명의 이름을 카그바(Kagba), 바다다카리다(Badadakharida), 바다딜마(Badadilma)라고 부른다. 동방교회와 에티오피아 기독교는 호르(Hor), 카르수단(Karsudan), 바사나터(Basanater)라고 부르고 있다. 동방박사들은 노아의 후손 중에서 세 개의 부족(Family)을 대표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은 모두 홍수 후에 동방의 아라랏산 인근에서 왔기 때문에 노아의 가족이라고 볼수 있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아라랏산은 현재 터키의 영토에 속하여 있지만 아르메니아가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다.
성산(聖山)인 터키의 아라랏 산. 이곳에 노아가 홍수 후에 도착하였으며 훗날 동방에 살던 노아의 후손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러 갔다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동방에서 왔다고 하는데 동방이라는 것은 과연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그리스도가 탄생할 당시에는 팔레스타인 동부, 고대 메디아, 페르시아, 아시리아(앗수르), 바빌로니아 등지에서 제사장들이 점성술이나 예언을 하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유대의 동편에 거대한 파르티아(Parthia)제국이 있었다. 그러므로 성경 속의 마기(동방박사)들은 파르티아제국, 즉 훗날의 페르시아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주장에 의하면 예멘(Yemen)에서 왔다는 것이다. 당시 예멘의 왕들은 유태인이었다. 비잔틴 미술에서 예멘의 유태인들은 페르시아 복장으로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어서 예멘에서 온 사람들은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들로 혼동할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이들이 예물로 가져온 황금, 유향, 몰약은 예멘에서 쉽게 구할수 있는 물건이라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바벨론에서 왔다고 보고 있다. 당시 바벨론에서는 점성술이 크게 융성했기 때문이었다.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Brown)이라는 학자는 저자인 마태가 외국취향의 사람이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동방에서 왔다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며 실은 유대 땅에서 온 선지자들이라고 주장했다. 하기야 유대땅을 동방이라고 표현한 자료도 있기는 하다.
예멘의 고대도시 자비드(Zabid). 동방박사들이 예멘 출신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고대 예멘의 수도였던 자비드에서 왔다고 생각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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