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오페라 작곡가 일화

조아키노 로시니

정준극 2010. 8. 11. 12:55

조아키노 로시니에 대한 일화

Gioacchino Rossini

 

놀라운 암기력

로시니의 기억력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 그의 재능이 처음 발견되었던 것은 그가 15세의 소년이었을 때였다. 당시 로시니는 볼로냐에서 어떤 예쁜 소프라노를 좋아하고 있었다. 15세의 소년이 무얼 안다고 벌서부터 연애감정을 가지겠냐고 하지만 그 분야에 있어서 비교적 조숙하였던(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렇지만) 로시니에게는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당시 메르카단테의 어떤 오페라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로시니가 좋아하는 소프라노 아가씨는 그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를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서 로시니에게 악보를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로시니는 그런 일이라면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즉시 오페라단장을 찾아가 아리아 악보를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오페라단장은 전에 젊은 로시니가 오페라를 작곡하겠으니 의뢰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핀잔과 함께 거절한 일이 있었다. 소프라노 아리아 악보를 구하지 못한 로시니는 그날밤 그 오페라를 직접 보고 소프라노 아리아를 기억하였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오선지에 그대로 옮겼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오페라단장은 악보관리인이 몰래 악보를 빼돌려서 로시니에게 주었다고 생각하여 대단히 화를 냈다고 한다. 로시니는 오페라단장에게 '정 그렇다면 이틀밤만 여유를 주세요'라고 말하고 그 오페라의 전체 스코어를 모두 암기하여 악보에 옮겼다. 깜짝 놀란 오페라단장은 로시니와 친구가 되어 당장 로시니에게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하였다. 로시니의 기억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초기 사진으로 남은 로시니의 모습

 

게으른 로시니

로시니는 천성이 게을렀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는 따듯한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싫어서 그냥 침대에서 작곡을 했다. 어느날, 이날도 침대에서 작곡을 하던 중 악보 한장이 바람에 날아가서 저 멀리 떨어졌다. 추운 방에서 악보를 줍기 위해 일어나기가 싫었던 로시니는 새로 악보를 다시 그렸다. 로시니는 그만큼 게을렀다. 다만, 이번에는 날아가 버린 악보의 음악보다 더 훌륭한 멜로디였다고 한다. 로시니의 전기작가였던 서덜랜드 에드워즈는 또 다른 버전을 소개했다. 어느날 친구 한명이 로시니를 찾아왔다. 침대에서 작곡을 하던 로시니는 친구에게 '마침 듀엣을 떨어트렸으니 좀 집어주게나. 아마 침대 아래 어디에 있을 것이네'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침대 아래에서 두장의 악보를 발견했다. 모두 새로 작곡한 소프라노 아리아였다. 로시니는 친구에게 '여보게, 이 두 개의 아리아 중에서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 것이 더 나은것 같은가?'라고 물었다. 친구가 '그런 곤란한 질문을 하면 어떻게 하나? 이것도 너무 좋은 것 같고 저것도 너무 좋은 것 같으니 말일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로시니는 '할수 없군.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오히려 다시 작곡하는 것이 더 쉬울거야'라면서 그 자리에서 새로 아리아를 작곡하여 오선지에 그렸다.

 

이탈리아 정부가 발행한 로시니 기념 우표

 

13일만의 작곡

로시니의 작곡 스피드는 알아주는 것이었다. 최대의 걸작인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단 13일만에 완성했다. 로시니는 집에서 입는 가운을 걸치고 면도도 하지 않은채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어떤 친구가 '아니, 이발사에 대한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면도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로시니는 '여보게, 만일 내가 면도를 한다면 외출하게 되고, 외출을 했다고 하면 집에 제 때에 돌아오기가 어려울 텐데 그렇게 되면 이 오페라를 제 시간안에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네'라고 대답해 주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무대

 

이발사와 로시니

로시니는 자기의 오페라가 공연될 때에는 매일 아침에 이발소에 들려서 면도를 하고 단장하는 습관이 있었다. 로시니가 단골 이발소에 들린 그 날에는 '토르발도와 도를리스카'(Trovaldo e Dorliska)라는 새로운 오페라의 첫번째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있는 날이었다. 이발사는 로시니에게 면도를 해 주면서 '선생님, 오늘 밤이지요?'라고 말했다. 이발사가 밑도 끝도 없이 오늘밤이라고 말하자 로시니는 '아니, 오늘밤이라니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발사는 '아, 오늘 밤에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요, 클라리넷 수석주자랍니다.'라고 말했다. 로시니는 단골 이발소의 이발사가 로마 발레극장(Teatro Valle)의 클라리넷 수석 주자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이발사는 면도하면서 로시니에게 그 오페라의 음악표현에 대하여 이것 저것 찬찬이 물어보았다. 로시니는 바뻐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이발사에게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로시나가 이발소에 가서 하도 나오지 않자 찾아온 친구가 로시니에게 '아니, 여보게! 자넨 생전에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연주에 대하여 한번도 얘기를 나눈 일이 없는데 오늘은 웬 일인가?'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면도를 마친 로시니는 '아니, 그럼 내 목에 시퍼런 칼을 대고 있는 사람인데 해 달라는 대로 해 주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대답했다.

 

1820년대의 로시니

 

바그너에 대한 평가

로시니는 이름난 미식가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요리를 만드는 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어느때 로시니는 사람들 앞에서 특식을 만드는 시범을 보인 일이 있었다. 그런데 소스를 만드는데 생선이나 고기 다진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건 어떤 소스냐고 물었더니 '이건 멜로디가 없고 하모니만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스'라고 말했다. 바그너의 음악을 빗대어 말한 것이었다.

 

로시니가 바그너의 음악을 싫어한다는 소문이 파리에 퍼졌다. 특히 '탄호이저'의 파리 공연 이후에 그런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로시니는 어떤 신문에 게재한 글에서 자기가 바그너를 싫어한다는 것은 근거없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바그너의 오페라를 한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로시니는 '탄호이저'에 나오는 행진곡만은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로시니가 '탄호이저'는 본 모양이었다.


바그너의 '탄호이저'의 무대

 

슈트라코슈의 아리아

파리의 이름난 오페라 흥행가인 모리스 슈트라코슈(Maurice Strakosch)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유망주들을 발굴하여 데뷔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슈트라코슈는 성악가로서 신인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나 그의 주변에는 오페라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성공하고 싶은 여인들이 많았다. 당시에 파리에서 로시니의 오페라는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로시니의 오페라에 출연하고 싶으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되어야 했다. 어느날 슈트라코슈는 어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데리고 와서 로시니의 코멘트를 듣고자 했다. 그 소프라노는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에서 '방금 들린 그 소리'(Una voce poco fa)를 온갖 열심을 다하여 불렀다. 로시니가 물었다. '참 좋은 아리아인데, 누가 작곡했나요?' 놀란 소프라노는 '선생님이 작곡하신 것인데요'라고 간신히 대답했다. 로시니는 '내가요? 난 그런 곡을 작곡한 일이 없는데...아마 슈트라코슈가 작곡한 것이겠지요'라고 말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로지나

 

로시니의 새 오페라?

로시니가 파리생활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간지 얼마되지 않아서의 얘기다. 파리의 로시니 팬들은 이제 더 이상 로시니의 아름다운 오페라를 볼수 없게 되어 낙담천만이었다. 그런데 어떤 돈 많은 팬이 자기가 로시니에게 연락해서 파리의 로시니팬들을 위한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하도록 할테니 걱정말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는 백지수표를 넣은 편지를 로시니에게 보내어 제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보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놀랍게도 얼마후 로시니로부터 소포 뭉치와 함께 답신이 왔다. 백지수표를 보낸 부자는 '그것 보시오, 로시니 선생이 새로운 오페라의 악보를 보내셨다오'라면서 자못 의기양양했다. 그런데 소포를 조심스럽게 풀어보니 모르타델라 소시지와 마늘 소시지가 나왔다. 편지에는 '이것이 내가 만든 새로운 작품이올시다'라고 적혀 있었다. 모르타델라 소시지는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에 돼지 목 부분의 굳기름을 넣고 양념을 한 소시지이다.

 

모르타델라 소시지

 

로시니 기념상

로시니에 대한 인기가 절정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이 위대한 작곡가를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상을 세워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기념상을 세우는 일은 로시니에게는 비밀로 진행되었다. 얼마후 모금운동을 주도했던 사람이 로시니를 찾아와서 '선생님. 이것 보세요. 돈이 이만큼이나 모였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모금된 돈을 본 로시니는 '아니, 내 기념상을 세운다고요? 어디에다 세운다는 것이요? 장소를 알려주면 내가 거기에 가서 서 있겠소. 대신 돈은 나를 주시요'라고 말했다.

 

볼로냐시민회관에 있는 로시니 기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