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와 마야 - 두 사람의 씨씨
뮤지컬 '엘리자베트'의 타이틀 롤인 엘리자베트(씨씨)는 초연 이래 지금까지 두 사람의 여배우가 세계의 인기를 끌며 맡아왔다. 피아 도우에스(Pia Douwes)와 마야 하크보르트(Maya Hakvoort)이다. 신통하게도 두 사람 모두 네덜랜드 사람이다. '방랑하는 화란인'들의 후손이어서 그런지 두 사람 모두 세계를 돌며 씨씨의 역할을 맡아왔다. 마야는 무려 1천번 이상이나 씨씨로서 무대에 섰으며 피아 역시 약 9백회의 씨씨 공연을 기록했다. 말이 1천번 출연이지 모르긴 해도 그건 기네스북에 올라가야할 세계적 기록이 아닐수 없다. 그나저나 오스트리아에서 만들어진 오스트리아 왕비에 대한 뮤지컬의 주인공이 오스트리아 사람이 아닌 외국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흥미 있는 일이다.
엘리자베트 왕비 역의 피아 도우에스.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피아 도우에스는 1964년 암스텔담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2011년으로서 벌서 47세이다. 피아의 아버지는 예술품 딜러였다. 그리고 피아는 도리스 데이(Doris Day)의 증손녀가 된다. 아무튼 예술과 관련된 집안에서 자라났다. 피아는 소녀시절에 간호원이 되고 싶어했다. 정박아들을 위해 봉사코자 했다. 그러던중 우연히 어떤 디스코 클럽에서 춤을 추다가 어쩐지 자기가 생각해도 춤을 너무 잘 추는 것 같아서 '아하, 나의 갈 길은 댄스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무작정 런던으로 건너가서 전화번호부의 옐로우 페이지에서 발견한 브루킹발레학교(Brooking School of Ballet)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한 후 찾아가 오디션을 보고 입학을 허락 받았다. 피아로서는 과거에 어떤 댄스교육도 받은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는지 춤을 잘 추었고 노래도 잘 불렀다. 1년후 피아는 비엔나에서 열린 뮤지컬 워크샵에 다른 학생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지금은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된 샘 케인(Sam Cane)과 수시 니콜레티(Susi Nicolett)가 함께 참가했었다. 샘 케인은 당시 주변 사람들에 '아이구, 피아가 톱 스타가 되지 않는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말했다.
피아 도우에스
피아는 비엔나가 좋았던지 비엔나에서 직업을 가지고 활동할 생각을 했다. 그러던중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공포의 작은 상점'(Lttle Shop of Horror)에 단역을 맡아 출연하게 되었다. 비엔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암스텔담에서도 자주 역할을 맡았다. 예를 들면 1991년에 암스텔담에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화란어 초연에 출연한 것 등이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992년, 드디더 피아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비엔나에서의 '엘리자베트' 세계 초연에 타이틀 롤을 맡게 된 것이다. 초연이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이미지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피아는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했다. 독일어도 완전히 마스터해야 했다. 그런데 '엘리자베트'의 초연이 끝나자 신문들은 평론을 통해 Munter geht die Sisi unter(문터 게트 디 씨씨 운터)라고 입을 모았다. '씨씨는 망했다'는 뜻이다. 피아가 만인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씨씨의 이미지를 잘못 표현하여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는 의미였다. 피아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밤을 지새며 피나는 노력을 거듭하였다. 과연! 피아가 두번, 세번 씨씨를 맡아 연기하자 사람들이 피아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피아는 '수퍼스타'라는 찬사를 듣게 되었다. 피아는 씨씨의 대명사가 되었다. 뮤지컬 '엘리자베트'는 독일어 뮤지컬 중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피아는 계속하여 '엘리자베트'에 출연하였다. 1994년, 피아는 네덜랜드에서 '에비타'의 에바 페론을 맡기 위해 비엔나를 떠났다. 씨씨의 역할은 마야 하크보르트가 인계를 받았다.
물론 진짜 엘리자베트가 훨씬 아름답고 우아하여 피아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처지이다. 다만, 피아는 춤도 잘추고 노래도 잘한다.
오늘날 피아 도우에스는 우테 렘퍼(Ute Lemper)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 지금까지 피아가 내놓은 뮤지컬 CD는 25장이 넘는다. 그건 대단한 기록이다. 피아는 호세 카레라스가 오페라 연습을 할 때에 연습파트너를 지내기도 했다. 피아는 점차 연기파로 발전해 나갔다. 2008년에는 로이드 웨버의 '선셋 블르바드'(Sunset Boulevard)에서 악명 높은 노마 데스몬드(Norma Desmond)의 역할을 맡았다. 2009년에는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Velma Kelly)를 맡았다. 피아는 현재 네덜랜드에서 화란어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지내고 있다. 2011년에는 '마스터 클래스'라는 뮤지컬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역할을 맡았다.
마야 하크보르트
마야 하크보르트는 1966년 네덜랜드의 니메겐(Nijmegen)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피아 도우에스보다 2년이나 나이가 젊다. 어려서부터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춘다는 소리를 들은 마야는 내친 김에 노래도 배우고 춤과 연기를 배우기 위해 처음에는 마아스트리히트(Maastricht)음악원에 다녔고 그후에는 암스텔담에 가서 데 트랍(De Trap)이라는 예술아카데미에 다녔다. 뮤지컬 배우로서 데뷔한 것은 1989년이었다. 뮤지컬 '진스'(Jeans)에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그후 여러 단역들을 맡아오다가 1994년 피아 도우에스가 사정이 있어서 '엘리자베트'를 맡지 못하자 대신하여 드디어 비엔나의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뮤지컬 '엘리자베트'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마야는 대인기를 끌었다. '씨씨가 살아 돌아왔다'는 극찬까지 받았다. 생긴 모습도 얄상하여서 씨씨로서 제격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마야는 엘리자베트 역할로서 유럽 순회 공연을 가졌다. 마야는 유럽 최고의 뮤지컬 스타가 되었다. 마야는 2005년과 2006년에 'Maya goes solo'라는 현수막 아래에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를 순회하며 솔로 공연을 가졌다. 2007년에는 비엔나연극협회의 동료들과 함께 '엘리자베트'의 일본공연을 떠났다. 일본에서는 이미 뮤지컬 '엘리자베트'가 순수 일본 출연진에 의해 공연되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오리지널 '엘리자베트'가 방문하였으니 그 인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마야는 뮤지컬에서 다른 역할도 맡았지만 '엘리자베트'에 크게 주력하여 지금까지 1천번 이상이나 '엘리자베트' 역할을 맡았다.
씨씨로 분장한 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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