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이외에 듣지 못하게 된 작곡가들이 있다
우리는 악성 베토벤이 말년에 청각장애가 생겨서 듣지를 못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베토벤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그가 들을수 없을 때에 대부분 작곡했다. 교향곡 제9번 일명 '합창'의 경우가 그러하다. 우리는 작곡가가 음을 들을수 없는데 어떻게 작곡을 할수 있느냐면서 베토벤에게 놀라움과 함께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갖는다. 위대한 작곡가 중에서 베토벤 이외에도 나중에 들을수 없었던 사람들이 더 있다. 대표적인 경우의 작곡가 5명을 소개한다.
윌렴 보이스(William Boyce: 1711-1779). 윌렴 보이스는 18세기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흐와 마찬가지로 교회 오르가니스트로서 생활을 했지만 뛰어난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보이스는 훗날 청각에 장애가 생겨서 아무것도 들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회 오르가니스트의 직업을 사임해야 했다. 그는 헨리 퍼셀이나 윌렴 버드(William Byrd)의 작품들을 편집하면서 말년을 보냈다.
이그나즈 홀츠바우어(Ignaz Holzbauer: 1711-1793). 모차르트의 친구인 그는 약 70편의 교향곡과 대여섯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는 말년에 완전히 들을수가 없어서 더 이상 작곡을 하지 못했다.
펠릭스 드래제케(Felix Draeseke: 1835-1913). 그의 피아노 작품인 Sonata quasi Fantasia는 바그너와 리스트조차 감탄을 금치 못했던 뛰어난 작품이었다. 그는 중년에 이미 청각에 장애가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와 교향곡들을 작곡했다. 그는 말년에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어 더 이상 작곡을 하지 못했다. 독일의 코부르크 출신이다.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 1845-1924). 포레의 진혼곡(레퀴엠)은 모차르트, 베르디의 진혼곡과 함께 세계 3대 진혼곡으로 알려진 위대한 작품이다. 그러나 포레는 영국의 보이스, 오스트리아의 홀츠바우어와 마찬가지로 말년에 완전히 청각을 잃어 더 이상 작곡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초고음과 초저음의 주파수를 가진 소리를 듣지 못하였으나 나중에는 다른 소리도 분간하지 못했다.
베드리치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 체코의 국민작곡가인 스메타나가 말년에 완전히 청각을 잃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스메타나는 그의 불후의 명작인 '나의 조국'(Ma Vlast)을 작곡할 때에 이미 청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실제로 스메타나는 귀가 들리지 않기 전부터 만성 이명(耳鳴: Tinnitus)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결국 스메타나는 정신이상을 일으켜 프라하의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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