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링-카이 일주

로싸우어 카제르네(Rossauer Kaerne)

정준극 2012. 2. 20. 15:26

로싸우어 카제르네(Rossauer Kaerne)

 

위에서 내려다본 로싸우어 카제르네의 위용

 

슈타츠오퍼에서 팔라멘트와 비엔나대학교 쪽으로 링 슈트라쎄를 따라 계속 가다보면 비엔나 증권거래소인 뵈르제를 만나게 되고 계속 더 따라가면 슈베덴플라츠 쪽으로 가게 된다. 슈베덴플라츠에 못미쳐서, 즉 링슈트라쎄의 끝자락에 지금까지의 건물들과는 상당히 다른 붉은 벽돌의 거대한 건물이 있다. 어찌보면 런던에 있는 햄튼궁전 등 튜도 왕조의 궁전을 닮았으며 캠브릿지의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의 건물과도 비슷하다. 로싸우어 카제르네(Roßauer Kaserne)이다. 글자그대로 하면 로쓰는 말이라는 뜻이며 카제르네는 병영을 말한다. 그러므로 로싸우어 카제르네라고 하면 군마병영(軍馬兵營)이다. 로싸우어 카제르네는 1870년에 완공되었다. 링슈트라쎄 건물들 중에서 거의 마지막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로싸우어 카제르네는 군마병영으로서 약 4백두의 군마와 4천명의 병력(兵力)을 수용할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위에서 바라본 로싸우어 카제르네

 

1848년의 거칠었던 혁명을 겪은 당국은 비엔나가 의외로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비엔나 인네레 슈타트의 요소요소에 병영과 경찰서를 두어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프롤레타리아 시민혁명을 진압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 이들 병영과 경찰서들의 센터는 현재 3구의 군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르제날(Arsenal)이었다. 만일 비엔나 시내에서 반도들의 의한 폭동이 일어난다면 아르제날은 시내의 폭도들에게 대포를 쏘아 진압하는 최적의 장소였다. 이와 함께 14구의 에케 라이저슈트라쎄(Ecke Leyserstrasse)에 있는 프란츠 요셉 카제르네의 기지에서 기병대를 출동시키고 그리고 링슈트라쎄의 끝에 있는 로싸우어 카제르네의 기지에서도 대포를 쏘고 기병대를 출동시켜 진압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붉은 벽돌의 영국 왕궁처럼 생긴 로싸우어 카제르네는 실상 방어와 진압 목적으로 건설된 건물임을 알수 있다.

 

도나우카날에서 바라본 로싸우어 카제르네

 

이 방대한 건물은 제국 군대의 장교인 칼 필할(Karl Philhal)과 칼 마르클(Karl Markl)이 설계했다. 로싸우어 카제르네는 세 개의 내정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웅장하고 견고한 벽과 요새와 같은 망루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건물은 물론 19세기의 현대식 전쟁에는 당치도 않은 스타일이지만 아무런 군사훈련도 받지 않은 시민폭동대 또는 혁명대에 대처하는데에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설계를 맡은 사람이 화장실을 생각하지 않고 설계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대로 공사를 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이같은 실수를 깨달은 설계자 중의 한 사람은 너무 부끄러워서 자살했다고 한다. 물론 로싸우어 카제르네에는 처음부터 화장실이 있었다. 하지만 바깥 쪽의 세 면에 있는 두개의 탑들에만 있었다. 따라서 추가 화장실을 지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막대한 예산이 추가로 들었다.

 

로싸우어 카제르네의 정면

 

로싸우어 카제르네는 1차 대전 중에 포로로 잡은 전쟁포로들을 다른 지역으로 배치하는 본부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공화국이 되자 당국은 이 건물을 어떤 용도로 사용해야 할지 아이디어가 없었다. 우선은 무주택자들을 위한 임시숙소와 기념관으로 사용했다. 그 후에는 차고로도 사용했다. 로싸우어 카제르네는 2차 대전중에 폭격을 받아 크게 파손되었다. 파손도 파손이지만 건물이 오래되어 점차 손상되어 갔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건물을 1977년에 전부 철거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가 역사적인 중요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어서 전면수리키로 했다.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성공적으로 종료되자 정부의 일부 부처 및 비엔나 경찰청이 이전해 들어왔다. 1989년에는 국방성의 일부 부서가 옮겨왔다. 국방성이 차지한 내정은 칼 초콜 호프(Carl-Szokoll-Hof)라는 이름을 붙였다. 1943년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버그 대령등의 7월 20일 계획에 참여 했던 비엔나 출신의 국방군 소령인 칼 초콜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칼 초콜 소령은 다행히 나치의 체포를 피하여 살아남아서 전쟁 후에 영화감독 등으로 활동하다가 2004년에 세상을 떠났다. 로싸우어 카제르네는 내부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국방성, 경찰청 등의 부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만 밖에서나 감상해야한다. 정문 앞에는 도이치마이스터 기념물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다. 독일기사단을 기념하는 조형물이다.

 

쇼텐링의 도이치마이스터플라츠에 있는 도이치마이스터 기념상(Hoch- und Deutschmeister-Denkm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