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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펙(OPEC) 본부

정준극 2012. 6. 2. 08:30

오펙(OPEC) 본부

 

2009년 12월에 이전하여 입주한 OPEC의 새로운 본부건물. 뵈르제(증권거래소) 옆에 있다. 비엔나 시내에서는 드믈게 9층 건물이다.

                             

비엔나에 오펙(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OPEC: 석유수출국가기구)의 본부가 있다. 석유수출국가기구의 본부라고 하면 저 중동의 어느 나라, 예를 들면 이란이나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유럽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있다. 오펙이 설립된 것은 1960년이다. 이락의 바그다드에서 창설되었다. 그러나 화약고와 같은 중동에 본부사무실을 둔다면 전쟁이 났을 때 폭격받을수도 있으므로 안전한 곳에 두기로 했다. 설립 이듬해인 1961년에 스위스의 제네바에 본부사무실을 오픈하였다. 제네바라고 하면 국제기구들이 여럿이나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4년 후인 1965년에 비엔나로 본부를 옮겼다. 오펙 본부가 비엔나로 정착하게된 데에는 당시 오스트리아 외상이던 브루노 크라이스키(나중에 수상)의 공로가 컸다. 크라이스키 외상은 오스트리아가 전쟁이 끝나고 강대국의 통치를 받은지 10년만에 영세 중립국을 선포하고 외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국가가 되자 중립국으로서 국가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국제기구들을 유치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원래 제네바에 두려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본부를 비엔나로 유치하여 링 슈트라쎄에 있는 현재의 그랜드 호텔에 임시 사무소를 설치토록 하고 나중에 좋은 건물을 지어서 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무튼 그렇게 하여 도나우 강변 바그라머슈트라쎄에 우노시티(UNO City)가 마련되었고 국제원자력기구등 여러 국제기구들이 입주하였다. 오펙 본부를 비엔나에 유치하려는 것도 크라이스키 외상이 적극 추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도나우 카날 건너편에 있었던 구 오펙 본부 건물

 

크라이스키 외상과 당시 오펙 사무총장간의 협의가 원만히 이루어져 1965년에 오펙 사무실이 비엔나에서 오픈되었다. 독토르 칼 뤼거 링(Dr Karl Lueger Ring) 10번지의 건물이었다. 그러나 1975년에 저 유명한 '자칼 카를로스'의 끔찍한 테러가 일어나서 누구든지 더 이상 그 사무실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론 해를 거듭할수록 사무실이 비좁아서 견디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1977년에 슈베덴플라츠의 도나우 카날 건너편 오베레 도나우슈트라쎄(Obere Donaustrasse) 93번지의 건물로 이전하여 잘 지내다가 더 멋있는 현대식 건물에서 회의를 하고 싶어서 2009년 12월에 쇼텐링의 뵈르제 건물 옆에 새로 지은 9층 건물로 이전했다. 교통도 편하고 한적한 편이며 건물 뒤편에는 헤르만 그마이너(Hermann Gmeiner) 공원이 있어서 분위기도 좋은 장소이다. 또한 주변에는 별 다섯개짜리 훌륭한 호텔들이 있기 때문에 회의 참가자들로에게는 더구나 편리했다. 주소는 1구 헬퍼슈토르퍼슈트라쎄(Helferstorferstrasse) 17번지이다. 종전의 본부사무실이 있던 오베로 도나우슈트라쎄는 2구 레오폴드슈타트에 속한 지역이다. 레오폴드슈타트는 유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구역이다. 그런 지역 안에 오펙 본부가 있다는 것도 조금은 마땅치 않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헤르만 그마이너 공원

 

저 악명 높은 '자칼 카를로스'(Carlos the Jackal) 테러사건은 처음 오펙 사무실이 시내의 독토르 칼 루에거 링(현재는 우니페어지태트 링)에 있을 때인 1975년에 발생하였다. 비엔나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들떠 있던 12월 21일이었다. 그 사건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마침 그때 오펙회원국의 석유장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독토르 칼 루에거 링의 오펙 사무실은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 인근에 있는 건물에 있었다. 그 주변은 수상관저가 있어서 치안이 중요한 곳이었다. 그날 자칭 Arm of the Arab Revolution(아랍혁명지부)에 속한다고 하는 복면을 한 일당이 오펙 본부사무실을 침입하여 오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장관을 사살하고 사무실에 있던 70여명을 인질로 삼았다. 자칼이라는 악명으로 유명한 카를로스가 주도한 테러였다. 크리스마스 휴가 중인 크라이스키 외상이 급히 비엔나로 돌아와 이들과 협상을 벌였다. 카를로스는 인질들을 데리고 공항까지 갈 버스 한대를 요구했고 공항에는 DC-9 비행기를 준비해 달라고 요구했다. 카를로스는 인질 35명을 끌고 공항으로 가서 행선지를 밝히지 않은채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인질 중에는 11개국 석유장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얼마후 카를로스는 알제리아에 착륙하여 인질들을 석방하고 사라졌다. 실로 엄청한 사건이었다. 카를로스는 무엇을 얻었는가? 회의장에서 누가 가지고 있던 1백만불 가방을 카를로스가 가져갔다고 한다. 하지만 물론 그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PFLP라는 단체가 있다. 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이라는 단체이다. 이 단체는 사건이 있은지 얼마후 카를로스를 맹비난하는 성명을 내고 카를로스를 그들의 조직에서 추방한다고 발표했다. 인질들을 모조리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분노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사건 이후 오펙은 25년 동안 정상회담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카를로스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테러분자로서 지명수배 1호였다.

 

참고로 OPEC 회원국은 알제리아, 앙골라, 에쿠아도르, 인도네시아, 이란, 이락, 쿠웨이트, 리비아, 나이제리아, 카타르, 사우디 아라비아, 유나이티드 아랍 에미레이츠, 베네주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