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토리오의 세계/특별 오라토리오

베토벤의 '감람산의 그리스도'(Christus am Ölberge)

정준극 2015. 9. 4. 13:55

감람산의 그리스도(Christus am Ölberge) - Christ on the Mount of Olives

베토벤의 유일한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그리스도'.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지오 작

 

세계의 3대 오라토리오라고 하면 헨델의 '메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 그리고 베토벤의 '감람산의 그리스도'를 꼽는다. 그만큼 훌륭한 오라토리오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베토벤의 '감람산의 그리스도'는 마지막 곡인 합창 '할렐루야'만이 음악회에서나 교회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을 뿐이지 전곡이 연주되는 경우는 드믈다. 그것은 아마도 다채로움이 부족해서인듯하다. 전체 15곡 중에서 첫번째는 도입부의 음악이며 나머지 14곡 중에서 레시타티브가 6곡이나 차지하고 있고 합창이 5곡이며(한곡은 아리아와 합창) 또 나머지 4곡중에서 2곡만이 아리아이고 2곡은 듀엣과 트리오이므로 상대적으로 다른 오라토리오에 비하여 아리아가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그만큼 흥미를 갖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내용에 있어서도 다양하지가 못하다는 지적이다. 솔리스트는 세명이다. 테너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베이스는 베드로이고 소프라노는 천사 세라프일뿐이다. 성모 마리아도 나오고 막달라 마리아도 나오며 하나님의 음성도 들린다면 더 다채로웠을 것이다. 초연은 1803년 4월 5일 비엔나의 테아터 안 데어 빈(빈강변극장)에서 있었다.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베토벤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서 거의 10년 후인 1811년에 수정본의 초연을 가지고 악보를 출판하였다. 그나마 수정본이 오늘날에도 연주되고 있는 것이며 오리지널은 어떤 음악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몰몬 태버나클에서의 '감람산의 그리스도' 연주

 

'감람산의 그리스도'는 베토벤의 유일한 오라토리오이다. 베토벤은 오페라도 '휘델리오' 한 편을 남겼으며 오라토리오도 이것 한편 밖에 남기지 않았다. 베토벤은 아마도 평생을 통해서 적당한 드라마틱 작품이나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본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좋은 대본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신경을 썼다. 1790년대 초반에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자 베토벤은 '이러다가 나도 무대 작품을 하나도 쓰지 못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초조하게 생각했다. 1792년에 비엔나에 온 베토벤은 그때부터 무대 작품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오페라 등 무대작품을 작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거장으로부터 배우기로 했다. 그래서 안토니오 살리에리를 찾아가서 레슨을 받았다. 베토벤은 오페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오라토리오부터 시도해보고자 했다. 그래서 '감람산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오라토리오의 내용은 유럽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는 수난극(패션 드라마)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널리 알려진 것이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친 예수 그리스도는 앞으로 닥칠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에 넘쳐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서 제자들은 아래에 두고 홀로 다른 곳으로 가서 기도하다가 결국은 배반한 제자로 인하여 체포된다.

 

베토벤은 '감람산의 그리스도'를 다만 2주 이내에 작곡했다고 말했다. '감람산의 그리스도'는 연주시간이 1시간도 채 안되기 때문에 초연에서 다른 작품들과 함게 연주되었다. 초연에서 함께 연주된 작품은 피아노 협주곡 작품번호 37번과 교향곡 제1번, 교향곡 제2번이었다. 그러나 냉냉한 반응을 얻었을 뿐이었다. 어떤 신문은 그 이유에 대하여 이날의 입장권이 좌석에 따라 달랐다는 점을 들었다. 그 이전에는 어느 좌석이던지 상관없이 4 플로린 정도였다. 그런데 이날의 입장료는 맨 앞자리가 일반 입장료의 배나 되었고 예약석은 3배가 되었다. 그리고 박스 좌석의 입장권은 4플로린이 아니라 12 듀카였다. 많은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지만 교향곡이나 협주곡은 그나마 들어줄만했지만 오라토리오는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평론가는 이날의 오라토리오가 실패로 돌아간 것은 대본이 빈약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본은 '비너 차이퉁'(Wiener Zeitung)의 편집장인 프란츠 사버 후버트(Franz Xaver Huber)가 작성했다. 베토벤은 대본으 빈약했다는 논평에 대하여 민감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수정키로 했다. 베토벤은 이듬해인 1804년 3월 27일에 다시 연주회를 갖기로 하고 음악과 대본의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베토벤은 우선 드라마틱한 요소를 보다 강조하였다. 대본도 상당 부분을 다시 썼다. 결과 초연의 음악과 대본에 비하여 상당히 유창하고 보다 즐거운 작품이 되었다. 베토벤은 계속 수정작업을 했다. 그리하여 1811년에 악보를 출판할 때에는 오리지널에 비하여 거의 다른 작품을 선보일수 있었다.

 

비엔나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의 루드비히 반 베토벤

 

1. 도입부

2. 레시타티브. 여호와, 나의 아버지(Jehova, du mein Vater)

3. 아리아. 내 영혼이 두려워하나이다(Meine Seele ist erschüttert)

4. 레시타니브. 땅이여 진동하라. 여호와의 아들이 이곳에 있나이다(Erzittre, Erde, Jehovas Sohn liegt hier)

5. 아리아와 합창. 선하신 구세주를 찬양하라(Preist des Erlösers Gütte)

6. 레시타티브. 세라프여, 너희 입술로 알리라(Verkundet, Seraph, mir dein Mund)

7. 듀엣. 고난을 모두 안고 쉬어라(So ruhe dann mit ganzer Schwere)

8. 레시타티브. 고통과 두려움과 공포는 커지고(Gross sind die Qual, die Angst, die Schrecken)

9. 합창. 우리는 그를 보았노라(Wir haben ihm gesehen)

10. 레시타티브. 나를 잡아갈 그대(Di mich zu fangen)

11. 합창. 죄인인 그가 여기 있도다(Hier ist er, der Verbannte)

12. 레시타티브.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무모한 고통을 주도다(Nicht ungestraft soll der Verwegnen Scharr)

13. 트리오. 피가 흐르도다(In meinen Adern wühlen)

14. 합창 . 일어나라, 배반자를 체포하라(Auf! Ergreifet den Verräter)

15. 합창. 이 세상이 감사와 존경으로 노래하리(Welten singen Dank und Eh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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