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왕비로의 대관 헝가리 왕비로의 대관 1867년, 씨씨가 30세 되던 해의 일이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간의 기나긴 줄다리기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원으로 계속 유지하되 거의 독립국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헝가리 국왕으로 프란츠 요셉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 왕실 이야기/비운의 씨씨 2009.10.05
씨씨의 남다른 생활 씨씨의 남다른 생활 씨씨의 몸매는 한마디로 가냘픈 형이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아서 160 cm 정도이다. 허리는 유난히 가늘다. 20인치라고 한다. 씨씨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하였다. 호프부르크에 있는 씨씨의 거실을 보면 기계체조기구가 있다. 이를 통하여 몸매를 유지하.. 왕실 이야기/비운의 씨씨 2009.10.05
황태자의 죽음 황태자의 죽음 루돌프 황태자. 30세의 젊은 나이로 비엔나 근교의 마이엘링의 황실사냥산장에서 애인 마리아와 함께 자살했다. 프란츠 요셉과 씨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제국의 황태자 루돌프는 3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과 작별하였다. 비엔나 근교 마이엘링(Meyerling)에 있는 황실 사냥 별장.. 왕실 이야기/비운의 씨씨 2009.10.05
화려한 결혼식 화려한 결혼식 아우구스틴교회에서 거행된 프란츠 요셉 황제와 씨씨의 결혼식 바바리아로부터 엘리자베트의 비엔나 입성은 배를 타고 들어오는 것으로 준비 되었다. 비엔나 외곽의 린츠라는 도시로부터 도나우 강을 거슬러 올라와 비엔나의 누쓰도르프(Nussdorf)에 내리는 일정이었다. 화.. 왕실 이야기/비운의 씨씨 2009.10.05
프란츠 요셉 황제의 청혼 프란츠 요셉 황제의 청혼 다음날, 바드 이슐의 황실 별장에서는 무도회가 열렸다. 젊은 황제가 초청하는 무도회였다. 엘리자베트의 엄마 루도비카는 큰 딸 헬렌만을 무도회에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작은 딸 엘리자베트를 집에 혼자 두면 또 어딜 쏘아 다닐지 모르기 때문에 함께 데려 가기로 했다. .. 왕실 이야기/비운의 씨씨 2009.10.05
엄마와 이모의 계획 엄마와 이모의 계획 프란츠 요셉은 불과 18세의 나이에 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로 등극하였다. 젊은 황제의 어머니인 조피(Sophie: 또는 Sophia)는 프란츠 요셉의 결혼을 서둘렀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무궁한 발전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황제에게 왕비가 없다면 이것 또한 체면이 안 되는 일이기에 서두.. 왕실 이야기/비운의 씨씨 2009.10.05
씨씨는 누구인가? 씨씨는 누구인가? 씨씨는 누구인가? 공식 직함은 두 가지이다.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의 황비(Empress)이면서 헝가리의 왕비(Koenigin)라는 두 가지 직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인으로서 씨씨는 누구인가? 프란츠 요셉이란 남자의 부인이여,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둔 어머니이다 (첫째 딸은 세살도 되지 않.. 왕실 이야기/비운의 씨씨 2009.10.05
프란츠 요셉 1세에서 조카의 아들 칼에게 프란츠 요셉 1세에서 조카의 아들 칼 그건 그렇고 씨씨와 결혼한 프란츠 요셉에게는 1남 3녀가 있었다. 다음 황제 자리는 황태자인 루돌프에게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루돌프 황태자가 마리아라고 하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아가씨와 동반자살을 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새로운 황태자로서 .. 왕실 이야기/비운의 씨씨 2009.10.05
프란츠 요셉의 족보 프란츠 요셉의 족보 먼저 씨씨의 남편인 프란츠 요셉 황제의 족보부터 살펴보는 일이 순서일 것이다. 너무 멀리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겠기에 마리아 테레지아(영어로는 마리아 테레사) 여제로부터 시작해 보자.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최고 전성 시대였다. 서쪽으로.. 왕실 이야기/비운의 씨씨 2009.10.05
씨씨 서거 1백주년 씨씨 서거 1백주년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가 씨씨 역을 맡았던 영화 몇 년 전인 1998년, 오스트리아 전국은 씨씨(Sissi) 서거 1백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행사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거리마다 씨씨의 초상화가 물결을 이루었으며 씨씨에 대한 연극, 뮤지컬, 전시회, 영화 리바이벌, 책자 발간 등 할수 .. 왕실 이야기/비운의 씨씨 2009.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