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락문과 대원군 장락문과 대원군 그런 헌종은 비교적 검소한 사람이었다. 낙선재에 단청을 하지 않도록 했다. 창덕궁에서 단청을 하지 않은 전각은 낙선재가 유일하다. 당시 단청을 하려면 안료 값이 비싸서 상당히 돈이 많이 들었다. 단청을 하지 않은 전각을 좀 으시시하지만 백골집이라고 부.. 오궁 일화/창덕궁과 비원 2009.03.23
헌종의 러브스토리가 깃든 낙선재 헌종의 러브스토리가 깃든 낙선재(樂善齋) 낙선재는 조선 24대 왕인 헌종이 건축했다. 헌종은 첫 번째 왕비인 효헌왕후 김씨가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왕비를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왕비를 간택하는 일은 내명부의 일이었다. 헌종의 할머니, 즉 정조대왕의 왕비인 효의왕후가 총책임자였.. 오궁 일화/창덕궁과 비원 2009.03.23
낙선재의 여인들 낙선재의 여인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인 경빈을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낙선재는 최근까지도 출입금지였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여인들이 은둔하며 실제로 살았기 때문이다. 낙선재에는 순종황제의 이복동생인 영친왕의 비 이방자(李方子)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했.. 오궁 일화/창덕궁과 비원 2009.03.23
외로움을 달래주는 화계(花階) 외로움을 달래주는 화계(花階) 대조전의 뒤편과 옆에는 계단식 꽃밭이 있다. 이를 화계(花階)라고 한다. 계단이 네 개인 것은 춘하추동을 의미한다. 계단에 따라 계절별로 기화요초를 심었다고 한다. 대조전의 화계는 왕비를 위한 것이다. 왕비는 한번 궁궐에 들어오면 사가에서 부모의 상을 당했다고 .. 오궁 일화/창덕궁과 비원 2009.03.23
매화를 맛보다 매화를 맛보다 대조전에 붙어서 흥복헌(興福軒)이라는 전각이 있다. 1910년 순종이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를 결정한 방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해 거의 40년동안 강점당했다. 경술국치를 결정할 때에 어떤 상궁이 치마폭에 옥쇄를 감추었다고 한다. 옥쇄만 찍지 않으면 한일합방이.. 오궁 일화/창덕궁과 비원 2009.03.23
용마루가 없는 대조전 용마루가 없는 대조전 대조전은 다른 전각들과는 달리 용마루가 없다. 그런 건물을 무량각이라고 부른다. 앞에 있는 강녕전도 무량각이다. 왕은 평소에 강녕전에서 침식을 해결했지만 왕비의 처소인 대조전에도 의례상 자주 방문하여 지냈다. 왕은 용으로 비유된다. 왕이 주무시는 집의 지붕에 또 다.. 오궁 일화/창덕궁과 비원 2009.03.23
강녕전 옮겨 놓은 희정당 강녕전을 옮겨 놓은 희정당 창덕궁의 상징적인 으뜸 전각은 인정전이다. 그러나 왕이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머물렀던 건물은 희정당(熙政堂)이다. 하기야 그 넓은 인정전에서 매일 지낼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편전인 선정전이 있다. 하지만 선정전은 간혹 돌아가신 왕이나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혼.. 오궁 일화/창덕궁과 비원 2009.03.23
캐딜락을 탔던 순종 캐딜락을 탔던 순종 순조 이후 희정당은 편전 겸 침전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마지막 황제인 순종은 아예 희정당에서 살았다. 희정당의 전면으로 튀어나온 누각은 수정당이라고 한다. 수정당의 현관은 일반 전통궁궐의 현관과는 다르다. 계단이 없다. 순종은 유행에 발맞추어 캐딜락을 타.. 오궁 일화/창덕궁과 비원 2009.03.23
청기와집 선정전(宣政殿) 청기와집 선정전(宣政殿) 인정전 동편에 편전(便殿)이 있다. 일반적으로 대궐은 법전(法殿 또는 正殿), 편전, 내전(中殿)으로 구분한다. 그건 그렇고, 한문으로 便殿이라고 써놓으니까 혹시 변소(便所)가 있는 훌륭한 전각인줄 알고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게 아니라 편전.. 오궁 일화/창덕궁과 비원 2009.03.23
모던 인정전(仁政殿) 모던 인정전(仁政殿) 창경궁은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사용한 세 번째 건물이다. 첫 번째는 경복궁 안에 있는 건청궁으로 1888년의 일이다. 창덕궁에도 전등이 설치되었다. 인정전, 희정당, 대조전과 같은 건물에 현관등(玄關燈)과 샹들리에를 달았다. 인정전에서는 조선총독부 고관들의 파티가 자주 열.. 오궁 일화/창덕궁과 비원 2009.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