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 중화전에서 본 조정과 어도, 품계석, 그리고 중화문 경운궁에는 중명전(重明殿)이라는 전각이 있었다. 경운궁을 확장할 때에 가장 먼저 궁궐로 편입된 곳이다. 확장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어느정도 확장되었느냐하면 동쪽으로는 현재의 조선호텔이 있는 곳까지였으며 북쪽.. 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2009.03.26
대한제국이 선포된 장소 대한제국이 선포된 장소 일본에 볼모로 잡혀 갔던 영친왕의 일시 귀국 기념. 왼쪽으로부터 영친왕, 순종황제, 고종황제, 순종비인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고종과 민비는 경복궁의 건청궁에 살고 있었다. 1895년의 어느날 밤, 고종이 외출한 틈을 타서 일본 깡패(낭인)들과 일본 순경 나부랭이들이 건청궁.. 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2009.03.26
원래 명칭은 경운궁 원래 명칭은 경운궁 중화문에서 바라본 중화전 덕수궁의 본명은 경운궁이고 경운궁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살던 저택이었다.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07년 순종 때였다. 그러므로 고종 시대에도 덕수궁이 아닌 경운궁이었다. 1907년 일제의 압력에 의해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 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2009.03.26
근대 조선 역사의 증인 근대 조선 역사의 증인 덕수궁 중화전 우리나라가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고 불리던 시기가 있었다. 한말의 고종 때였다. 고종은 뜻한바 있어서 1897년 조선이라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고나서 34년 후의 일이었다. 제국(帝國)은 황제가 통치한다. 고종은 조선을 대한제.. 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2009.03.26
창경원의 원숭이 창경원의 원숭이 창경궁은 오랫동안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지내왔다. 1911년부터 1983년까지 무려 72년동안 창경원(昌慶苑) 신세였다. 일제가 궁(宮)을 공원과 같은 원(苑)으로 격하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백성들에게서 조선왕조에 대한 인식을 일부러 지워버리려고 그렇게 했다는 것.. 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2009.03.24
십장생 굴뚝 [십장생 굴뚝]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씨는 고종의 즉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조대비의 거처를 경복궁 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세심하게 만든 자경전(慈慶殿)에 마련하여 은혜에 보답하였다. 자경전은 그동안 두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88.. 오궁 일화/경복궁의 애환 2009.03.23
해시계 - 앙부일기 [해시계 - 앙부일기] 교태전과 경회루 사이에 흠경각(欽敬閣)이 있다. 흠경각은 임금이 백성들의 일상생활, 특히 농업의 발전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좋을지를 연구하던 전각이다. 흠경각 앞에 앙부일기(仰釜日기)가 남아 있다. 해시계이다. 장영실이 세종시절에 처음 만든 것이다. 해.. 오궁 일화/경복궁의 애환 2009.03.23
관리사무소의 해태 [관리사무소의 해태] 건춘문과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의 중간 쯤에 경복궁관리사무소가 있다. 일제시대에 지은 집으로 생각된다. 사변후에는 문화재관리사무소인지 또는 학술원인지 하여튼 그런 용도로도 사용된 비교적 작은 건물이다. 경복궁관리사무소 측면 입구의 양쪽에 해태상이 있다. 자못 고색.. 오궁 일화/경복궁의 애환 2009.03.23
자물쇠 [자물쇠] 경복궁 건물들에는 자물쇠로 잠구어 놓은 방이 많다. 근정정의 옆문들도 자물쇠로 잠구어 놓았다. 자물쇠를 관찰하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옛날에 만든 자물쇠가 아니고 요즘 만든 것이겠지만 서로 다른 모양의 자물쇠가 있어서 흥미를 끈다. 그보다도 격자무늬의 창살이 더 흥미를 끈다. .. 오궁 일화/경복궁의 애환 2009.03.23
아궁이-삽실 [아궁이 - 삽실] 큰 건물에는 온돌에 불을 넣는 아궁이가 있다. 일반 가정에서는 아궁이에 솥을 걸어 취사도 하는데 경복궁의 아궁이들을 보니 순전히 난방 목적이다. 숯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래야 연기가 조금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기가 거꾸로 새어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아궁이를 되.. 오궁 일화/경복궁의 애환 2009.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