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연 재현 기로연(耆老宴) 재현 기로(耆老)라는 말은 노인네를 말한다. 그러므로 기로연은 노인네들을 위해 베푸는 잔치이다. 그렇다고 노인네들을 위한 아무 잔치나 감히 기로연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통상적으로 기로연이라고 하면 조선 시대에 임금이 7순을 넘긴 중신들을 위해 베푸는 경로잔.. 오궁 일화/경복궁의 애환 2009.04.12
경희궁의 명물 서암 경희궁의 명물 서암 태령전 뒤편 언덕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특별하지도 않은데 사람들은 그 바위가 기이하게 생겼다고 말한다. 무엇이든지 특별하면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법이다. 커다란 바위도 특별한 모습이기 때문에 서암(瑞巖)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원래는 바위가.. 오궁 일화/경희궁의 아침 2009.04.03
살아 있는 영조의 영정을 모셨던 태령전 살아 있는 영조의 영정을 모셨던 태령전 자정전 옆에 태령전(泰寧殿)이 있다. 처음에 광해군이 세울 때에는 특별한 용도가 없는 건물이었다. 심심하면 가서 낮잠이나 자려고 마련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영조는 자기의 초상화(어진)가 완성되자 결국 자기가 죽고 난 후에는 후손들이 .. 오궁 일화/경희궁의 아침 2009.04.03
일제가 헐었던 자정전 일제가 헐었던 자정전 숭정전 뒤편에 편전으로 자정전(資政殿)이 있다. 편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거나 경연을 여는 장소이다. 숙종이 승하하였을 때는 빈전(殯殿)으로 사용되었으며 한때는 역대 임금들의 어진(御眞)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하기도 했다. 이런 중요한 건물을 일.. 오궁 일화/경희궁의 아침 2009.04.03
일본인 사찰 조계사에 팔린 숭정전 일본인 사찰 조계사에 팔린 숭정전 숭정전 장충동에 있는 동국대학교에 올라가 보면 정각원(正覺院)이라는 대궐같은 집이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대궐같은 집이 아니라 대궐의 집이었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이었다. 다음은 서울역사박물관이 발간한 경희궁 안내 팜플렛에 실린 내용.. 오궁 일화/경희궁의 아침 2009.04.03
제자리를 찾았나? 흥화문 제자리를 찾지 못한 흥화문 앞서도 언급했지만 흥화문의 원위치는 경희궁의 동쪽 현재의 구세군 건물 자리에 있었다. 일제는 흥화문을 뜯어다가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의 정문으로 사용코자 했다. 박문사는 현재 신라호 자리 있었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서울시는 1988년 .. 오궁 일화/경희궁의 아침 2009.04.03
경희궁의 지붕 경희궁의 지붕 법전인 숭정전의 지붕위 잡상은 다섯개이다. 맨 앞에 삼장법사, 다음이 손오공, 그리고 사오정, 저팔계 등이 따르고 있다. 경희궁의 전각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지붕들도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보기에 좋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 오궁 일화/경희궁의 아침 2009.04.03
일제가 파괴한 역사의 현장 일제가 파괴한 역사의 현장 동궐에 견줄만한 대궐 서울에 있는 조선왕조의 5궁 중에서 경희궁만이 유일하게 아직까지는 무료입장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점심시간에 인근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줄줄이 산책을 하러 나온다. 대개 공무원들인것 같다. 신분증들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 오궁 일화/경희궁의 아침 2009.04.03
수라간의 담장 수라간의 담장 건청궁에도 당연히 수라간이 있었다. 수라간에서 음식을 만들 때 생기는 냄새가 장안당으로 번지지 않도록 담장을 설치한 것은 특별한 배려였다. 아마 건청궁들의 전각들이 비좁게 서있기 때문에 그런 배려를 했던 것 같다. 건청궁 행각들의 일부 방문들은 특별하게 설계되어 있다. 문..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
관문각 터전 한국 최초의 전기 발상지 - 향원지 옆 건청궁 뒤편에는 서양건물인 관문각이 있었다. 지금은 공터로 남아 있다. 원래는 전통적인 목조건물이었으나 1891년 러시아 건축가인 사바틴(A. Sabatin)의 설계로 서양식 3층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사바틴은 덕수궁(경운궁)의 정관헌(靜觀軒)을 설계한 사람이다. 사..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