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파천을 지켜본 신무문 고종의 아관파천을 지켜본 신무문 신무문(神武門)은 경복궁의 북문이므로 건청궁에서 가깝다. 신무문 북쪽의 경복궁 후원 영역에는 여러 전각들이 있었다. 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보던 내농포(內農圃)도 그곳에 있었고 왕이 군사훈련을 점검하던 경무대(景武臺)도 그중의 하나였다. 일제는 광화문 앞..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
비극의 현장 옥호루 비극의 현장 옥호루 명성황후(민비)가 시해된 장소는 정확히 어딘지 모른다. 건청궁의 옥호루(玉壺樓)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일각에서는 장안당(長安堂)의 어느 방이라는 얘기도 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당시 민비는 친러정책을 ..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
조선미술관을 세우다 조선미술관을 세우다 1895년 저 유명한 민비 시해사건이 벌어진 후 일제는 되도록 건청궁을 보이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드디어 일제는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를 한지 2년후인 1909년 이런 저런 구실로 건청궁을 허물고 비어 놓았다가 1939년 그 자리에 볼품도 없는 조선미술관 건물을 지었다. 조선미술관..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
궁 안의 궁 궁 안의 궁 경복궁 안에 또 하나의 궁이 있다. 건청궁(乾淸宮)이다. 고종이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 친정체제로 간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지은 것이다. 고종이 임금이 된지 10년만인 1873년에 지었다. 원래 건청궁 터에는 세조 때에 지은 취로정이라는 전각이 있었으나 세월의 흐름..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
팔각칠층석탑 팔각칠층석탑 춘당지 두 개의 연못이 연결되는 곳에 이상하게 생긴 석탑이 있다. 팔각칠층석탑(八角七層石塔)이다. 비교적 높다. 7층이나 된다. 이상하게 생겼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보통 석탑과는 달리 가운데 부분에 마치 항아리를 놓은 것 같은 둥근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8각으로 되어 있는 것도 .. 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2009.03.31
한중록의 산실 자경전 터 한중록의 산실 자경전 터 통명전 뒤편 높은 언덕위에 자경전(慈景殿)이 있었다. 창경궁의 전각들이 손바닥 보듯 내려다보이는 지대이다. 잘만하면 저 멀리 남산까지도 보이는 곳이다. 지금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으로 자경전이 있었다는 안내판만 서 있다. 자경전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 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2009.03.31
너럭바위 너럭바위 집복헌 바로 옆, 후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있는 곳에 넓은 바위가 자연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모든 것이 정갈하고 정돈된 궁궐에서 자연 그대로의 엄청나게 커다란 바위가 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이 바위를 너럭바위라고 부른다. 깎아내어 평평한 마당으로 만들지 않고 .. 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2009.03.31
성종의 태실 성종의 태실 궁궐에서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삼칠일 사이에 길한 날을 택하여 태반을 깨끗이 씻고 술로 갈무리해서 태항아리에 넣어 보관했다. 이런 태항아리들을 봉안한 곳을 태실(胎室)이라고 불렀다. 태반을 넣은 태항아리는 보통 2중으로 만들어 한겹이 깨지더라도 보관될수 있도.. 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2009.03.31
간결한 디자인의 관천대 간결한 디자인의 관천대 문정전 남쪽으로 숲속에 관천대(觀天臺)의 유적이 있다. 천체를 관측하던 장소이다. 돌로 기단을 쌓고 난간을 두른 심플한 구성이다. 대위에는 소간의(小簡儀)를 두었다. 일제는 소간의를 어디론가 가져갔고 관천대 자체도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장식용으로 사용했다. 관천대.. 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2009.03.31
오얏꽃 장식의 대온실 오얏꽃 장식의 대온실 창경궁의 온실은 보통 온실이 아니라 이름도 거창하게 대온실이라고 한다. 대온실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큰 온실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아담하다. 하지만 운치가 있고 아름답다. 프랑스 르네상스 스타일이라고 한다. 온실 앞마당에는 잘 가꾸어 놓은 정원이 있.. 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2009.03.29